3차 산업 혁명 본격화 10만 대 이상 판매
세진 컴퓨터랜드는 1990년대 3차 산업 혁명 본격화와 함께 등장하였습니다.
창립자인 한상수 대표는 1991년 부산서면 지하상가에 컴퓨터 매장을 오픈하며 사업을 시작한 뒤 평생 무상 수리와 같은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전국 곳곳에 대형 매장이 있었으며 1996년에는 전국 57개의 직영매장을 확보하였고 한해 동안 10만 대 이상의 컴퓨터를 판매할 정도 였습니다.
창업 4년 만인 1996년에는 매출액 기준 당시 대기업이었던 삼성전자, 삼보 컴퓨터에 이은 국내 3위까지 올랐습니다.
타사와 달리 크고 깔끔한 매장에 친절한 직원까지 있었으며 상시적으로 할인 행사를 실시함과 동시에 정찰제를 실시하여 고객 기만행위를 하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그렇지만 무리하게 매장을 확대하다 보니 부채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자금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군대를 방불케하는 강압적인 직원 교육 및 권위적인 기업 운영 방침으로 인해 직원 불만까지 폭주하는 최고 경영자의 독단적인 경영 방식은 기업을 내부적으로도 붕괴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97년 말 대우 통신에 인수되었으나 IMF와 함께 대우그룹 자체가 흔들리자 부도를 내고 파산 선고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세진의 자산 규모는 784억 원이었으나 부채는 약 6배에 달하는 4800억 원이 었습니다.
sky 폰으로 유명
1897년 1월 한성읂행으로 출범한 조흥은행은 한국 최초의 민간 상업 은행입니다.
이후 1974년 동일은행과 합병 조흥은행으로 바꾸었고 1956년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을 상장하며 점차 성장해나갔습니다.
1963년에는 외국환 업무를 개시하였으며 1989년에는 조흥 리스를 설립하고 1992년에는 조흥 투자 자문을 인수 1999년에는 충북 은행과 강원은행을 합병하며 몸집을 키워갔습니다.
1999년에는 고객 만족 경영 최우수상을 2002년에는 한국 능률협회 선정 고객 만족 경영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한국 기네스 협회에서 국내 최고 은행 최고 법인 기업 기록 인정서를 발급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보 사태로 인해 우찬목 은행장이 구속되고 외환 위기로 자산 건전도가 떨어지며 위기가 찿아왔습니다.
이후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신한금융지주로의 매각 및 통합이 이뤄졌습시다.
이병철 회장의 차남 이창희 마그네틱 미디어 모리아
고급형 브랜들인 스카이의 품질에 대한 혹평이 이어지며 합병의 효과가 미미해졌고 결국 2006년 팬택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채무는 무려 1조 5000억원
이후 2010년 베가 베가 X 베가레이서 등 쟁쟁한 스마트폰과 함께 돌아온 팬택은 LG전자를 제치고 스마트폰 점유율 2위 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자금력이 약하다 보니 단통법 등 정부의 규제에 큰 충격을 받게되었습니다.
(2014년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였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신제품을 출시하며 반등을 노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전과 같은 성공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민간 상업 은행 신한은행으로 다시 출범
새한 미디어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 차남 이창희가 1967년에 창립한 회사입니다.
미국 마그네틱 미디어와 제휴 마그네틱 미디어 모리아로 시작하였습니다.
이곳은 이후 새한 전자에 흡수합병되었다가, 1980년 다시 새한미디어로 변경하며 입지를 다져 나갔습니다.
IMF로 새한 그룹 자체가 해체되자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론스타,골든브리지 컨소시엄 등과 M&A 진행에 실패하며 몰락하였습니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연달은 투자 실패로 인해 결국 2010년 코스모 화학 컨소시엄과 M&A본 계약을 체결하며 코스모그룹 계열사에 편입하게 되어 현재는 코스모신소재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반 채팅 프로그램 서비스웹 종료 및 몰락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메신저는 상당히 많습니다.
기반 채팅 프로그램 서비스유명 사이트
세이클럽,버디버디.마이피플
세이클럽은 1999년 6월 멀티미디어 웹 기반 종합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로 시작한 곳입니다.
네오위즈가 1997년 자본금 1억 원을 들여 설립한 세계 최초로 웹 기반 채팅 서비스 사이트입니다.
2001년 가을 세계 최초로 캐릭터 상품인 아바타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며 붐을 일으켰습니다.
2003년 회원 수 2000만 명을 돌파
매출액은 2001년 캐릭터 서비스 이후 100억 원을 넘기며 지속적으로 상승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2000년대 후반으로 가며 인기가 빠르게 하락하였습니다
버디버디
는 2000년 1월에 춤범한 웹 기반 채팅 프로그램으로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거두었습니다.
2003년 기준 국내 메신저 점유율 19.6%로 2위를 달성하기도 하였으며 회원 수는 무려 4200만 명에 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2008년 위메이드에 인수되어 4년간의 짧은 유지 기간뒤 2012년 갑자기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소식이 끊겼습니다.
두 메신저의 패인
확산해가는 스마트폰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두서비스 모두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외면받게 된 것입니다.
마이피플
스마트폰에 최적화 된 채팅 애플리케이션임에도 불구 조용히 사라진 서비스입니다.
2010년 5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곳은 2011년 2월 무료 통화 기능 및 무료 영상 기능을 추가하며 가입자 4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였습니다.
스마트폰 및 PC 모두 사용이 가능해 성장 가능성도 보였지만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되자 회사에서 카카오톡에 집중하기 위해 2015년 서비스를 종료시키면서 한순간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기업들의 공통적인 패인
점차 빨라지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점 무리하게 확장을 시도했던 점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때 한국을 풍미했던 만큼 서비스 종료 및 몰락한 기업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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